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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이 20대를 비난할 자격이나 있나?
20대의 자살. 그리고 아직도 자살 권유하는 사회 #. 이 글은 20대를 욕하는 386들에 대한 비'난'이자 20대인 저를 위한 변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진한 글입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시고 20대 전체를 파악하지 마시고 그저 저 개인의 의견으로 한정해서 읽어주십시오. 그리고 제 오류와 잘못에 대해 기탄없는 지적과 트랙백을 부탁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3,5에 링크된 글들도 꼭 한번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0 386이 싸움에 나선 세대인 것을 안다. 그들은 마왕을 물리친 세대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경한다. 그러나 마왕이 물러난 그 자리를 꿰찬 것은 밤의 커튼 그림자에 숨어서 욕망을 속삭이는 교활한 소악마였다. 우리 20대가 싸워야 했던 것은 그 소악마였다. 그러나 승리한 386세대는 말해야 할 것을 전부 말하지 않았다. 죽여야 할 것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많은 386세대들이 자신들의 승리에 취해 그 악마를 묵인했고 심지어 술판에 끼어든 악마와 함께 놀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작 우리 20대가 가장 위험했던 시기-IMF-에 그들이 챙긴 것은 ‘우리’의 요람이 아닌 ‘자신들’의 밥그릇이었다. 그때, 이미 386은 자신들의 혁명을 스스로 배신했다. 그런 당신들이 우리에게 무어 할 말이 있는가.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결국 ‘버림’의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에 의해 철저히 버림받은 세대가 20대이다. 가정을 지탱해야 했던, 버려지면 끝장이라는 공포 속에서 노이로제를 겪다시피 살아야 했던 50대는 자신의 자식들로 하여금 버려지는 처지에 놓이지 마라. 버리는 인간이 되라고 철저하게 가르쳤고 20대는 자신의 실존과 더불어 자신의 둥지와도 싸워야 했다. 386세대의 적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마왕이었지만 20대의 적은 보이지 않는 악마였다. 386세대들의 싸움에는 명백한 적이 있었지만 20대는 싸워야 할 적이 존재하되 그 적은 외부에도 내부에도 그리고 자신에도 집에도 학교에도, 그 모든 곳에 있었다. 20대는 자신의 존재자체가 적이었다. 그리고 386세대는 그러한 20대의 싸움을 지원하기는 커녕 20대의 적이 되어 나타나는 작자들이 대다수였다. 386이 만들어놓은 체제는 소악마를 키우는 체제였고 그러한 교육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들 모두가 20대의 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다시 새로운 자신을 찾는 길로 나선 20대의 수는 많지 않다.
노무현에 가장 열정적으로 미쳤던 것은 20대들이다. 이것을 뉘가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때 열광했던 내 친구들이 내가 추천해준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우석훈교수의 <88만원세대>보다 김훈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말라.>와 <밥벌이의 지겨움>에 더 공감하고 있는 이 개좆같은 상황을 당신들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그것은 20대가 개새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3 글이 이오공감에 올라가 있다. 욕만하고 끝내는 것은 옳지 않기에 나름 20대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한 글을 써서 올린다. 위의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20대가 살아나기 위한 두 개의 방안 #.4 오히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잘못들에 대해, 20대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것에 대해, 모든 20대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20대들이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20대의 냉소와 무관심이 전부 20대의 잘못이라고 비난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20대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20대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 순간 그나마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있던 남은 20대들조차 모두 꿈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억울하고 잔인한 일이다. 앞세대들이 20대들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 20대들은 끝난다. 공동체로부터 버림받는 그 순간 20대는 정말 끝난다. 버림받은 자에게 희망은 없다. 구성원을 버리는 공동체에게 미래는 없다. #.5 제 오류를 지적해주시는 두 개의 좋은 글들을 읽었습니다. 어떤 글을 읽고. (도라지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이십대 개론에 대처하는 이십대의 자세 (jeff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제가 아는 바가 적고 본디 '돈을 벌어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려던' 어린자라 미진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진한 앎에 근거하여 쓴 글을 보니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던 예전에 한 말이 떠올라 다시금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도 또한 앎을 넓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에 부디 무지한 자의 어린 글을 보시고 제가 아닌 다른 대학생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시지 마시고 또 마음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386세대들이 싸워 지금의 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본글에서 언급했다시피 4.19와 5.18에서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싸우신 분들에게 그 덕분에 그나마 지금 이러한 글을 끄적인 '자유'와 '민주'를 얻은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일찍 좌절하고 유혹당해 제대로 된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을 냉소하고 불신하는 것이 또한 지금 20대의 현실이기에 그에 대해서 결국 본글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변명이 될지라 하더라도 20대의 한사람이기 이전에 저라는 개인으로서 몇가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과연 20대의 냉소와 무관심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요. 몇분이 말씀하신대로 한세대를 어우르는 절대적인 고통은 없습니다. 고통은 절대 개별적인 것이고 그것의 일반화가 냉소와 무관심의 근거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있어 가장 큰 고통을 야기한 IMF는 모든 세대가 체험했기에 모두가 공감하는 고통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20대에게 있어 IMF는 저항할수도 그리고 인식할수도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20대 일반이 아니라 당시의 저의 이야기입니다. IMF라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난데없이 가족의 중심축이 무너졌고 위에서 말한 50대의 '버림받는 자가 되지 말고 버리는 자가 되어라.'는 말을 전 제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갑작스런 가정의 해체와 그와 동반되는 고통에 저는 저항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분명 저와 같은 20대들 또한 그 고통을 인식할수도 없었고 또 그 고통에 저항할 능력이 없었음을 저의 윗세대분들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이해해줘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성장한 20대를 이해해줘야하는 것이지 그들을 비난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86세대들을 가장 비난하는 문제는 경제체제도 사회체제도 아닌 교육체제입니다. 경제와 사회가 아닌 교육만은 386세대분들이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잘못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직업은 바로 '교사'였고 제가 왜 교사를 증오하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10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서 간신히나마 그 원인을 짚어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공동체에 있어 공동체 소속원의 인식을 깨워주는 것은 교육의 몫입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운영에 있어 가장 큰 정화기능을 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 학창시절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그 역할을 해내고 있지 못합니다. 그와 더불어 386세대 분들이 교육일선에 투입되었을 IMF시기를 지나고 지금의 생존경쟁위주의 모습과 신분상승의 기능으로서의 모습이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기 결코 약화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환경에서 근 18년을 지낸 저희, 아니 저는 제 스스로 그런 모습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나 역겹고 잔인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구조에 적응하지 못해 마저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시스템을 저희에게 강요한 것은 386세대가 만들어낸 정부이지 않습니까. 20대에게 있어 현재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인생의 2/3입니다. 그리고 그에 바탕한 경험만이 20대가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그리고 도태된 자는 도태된 자로서의 패배감을, 승리한 자는 승리한 자로서의 우월감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 어느때보다 현실을 왜곡시키는 현대의 다양한 오락을 접하고 있는 20대가 패배자는 냉소적일 수밖에 없고 승리자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자기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여태까지 밥벌이를 위해 살아온 저는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해체와 생존의 위협, 그리고 강요된 생존경쟁을 모두 체험한 20대가 그 어떤 도움없이 어떻게 인식을 깨칠 수 있겠습니까. 386세대는 그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고 무책임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변명할 여지가 없듯이 후대를 위해 어떤 길도 남기지 않은 선대들도 후대를 매도할 당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진한 사항. 그리고 지적받아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기탄없이 가르쳐주십시오. 최대한 성실하게 살피겠습니다. |